기자단팸투/제천팸투어

제천여행 가볼만한곳 박달재 목굴암과 오백나한전이 있는 목불박물관 제천관광마일리지여행

美知 2015. 12. 15. 18:12

 

 

 

12월은 여행을 떠나기 조금은 불편한때이나 겨울에 떠나는 여행 특히 제천은 어떨까?

 생각하던하던중에 제천관광마일리지 여행을 갔다.자가용을 이용하여 제천을 갔기때문에 일기에 많이 민감하였으나 일단

출발할때는 조금 스산했지만 괜찮아서 "이정도 날씨정도야 뭐~" 라고 하면서 갔는데 서서히 추워지더니

우리가 박달재를 올라갈쯤은 내리면 바로녹는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그나름 여행의 묘미가 느껴지리라 생각되어 열심히 둘러보며 사진으로 옮기기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지난해 갔을때는 없었던 목굴암과 오백나한천이 새로이 조성되어 박달재를 가면 박달재 목각공원과 함께 둘러볼 수있는

명소가 또 하나 생겼다. 끊임없이 볼거리가 생기는 제천은 가도 또가도 질리지 않는 곳이다.

 

 

고사목 내부에 부처의 황금빛 부조상이 있는 목굴암 천년목찰

목굴암은 몸을 구부리고 들어가서 예불하고 그대로 다시 나와야하는 신기한 목굴암자이다.

 

 

고사목인 느티나무 내부에 부처를 두고 오백나한의 얼굴조각한 오백나한전

오백나한은 부처님을 보좌하는 시중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박달나무가 많이 자생하므로 박달재라고도 하고

이 근처에서 죽었다는 박달이라는 청년의 이름을 따서 박달재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박달재에 관련하여 박달도령과 금봉이 처녀의 애틋한 사연이 구전으로 전해온다.

옛날 경상도 청년 박달도령이 서울로 과거보러 가는 길에 이 고개를 넘어 아랫마을 금봉이 처녀를 만나 사랑을 나눴는데,

박달은 과거급제하면 돌아와서 금봉이와 백년가약을 맺겠다고 언약하고 상경하고, 금봉이는 도토리묵을 장만하여

낭군이 될 박달도령 허리춤에 매달아주고 먼길에 요기하도록 배려했다.

 

 

낙방한 박달이 슬픔에 잠긴 채 돌아오다가 평동 금봉이 집을 찾았는데 금봉이가 박달을 기다리다 지쳐 3일전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식음을 전폐하면서 슬피 울었다고 한다. 그 때 마침 박달은 고갯마루 방향을 바라보니

꿈에 그리던 금봉이가 춤을 추면서 고개 쪽으로 가는 것을 보았고, 있는 힘을 다해 박달은 고개 쪽으로 달려가

금봉이를 잡으려고 했으나 손이 미치지 못하였다. 박달은 간신히 고개 위에서 금봉이를 끌어안았으나 금봉이는

이내 사라지고 박달은 허공으로 몸을 날려 천길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박달은 금봉이의 환상을 보고 낭떠러지에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그 후로는 이 고개를 박달재라고 한다.

 

 

1948년에 박달도령과 금봉이 처녀의 애틋한 사연을 담은 ‘울고넘는 박달재(반야월 작사, 김교성 작곡)’가

발표되어 오랫동안 애창되고 있다. 제천시 국도변의 박달재휴게소 입구에는 노래 가사를 적어 넣은

박달재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백과사전에서옮김)

 

박달이와 금봉이의 재연 조각공원이 있어 주변에서 산책을 하며 둘러보기에 아주 좋은 곳이었다.

 

 

12연기를 조각상이 있는 공원

 

십이인연(十二因緣)·십이유지(十二有支)라고도 한다. 12개의 각 항은 윤회(輪廻)의

생존(生存)을 구성하는 부분이라는 의미에서 유지(有支)라고 한다.

십이지(十二支)는 ① 무명(無明), ② 행(行), ③ 식(識), ④ 명색(名色), ⑤ 육처(六處), ⑥ 촉(觸), ⑦ 수(受),

⑧ 애(愛), ⑨ 취(取), ⑩ 유(有), ⑪ 생(生), ⑫ 노사(老死)이다. (백과사전에서옮긴글)

 

 

 

눈이 제법 내리던 즈음 열심히 둘러보며 사진도 찍다보니 어느새 진눈깨비는 그치고 다음여행지가 궁금하기에 ..

 

 

상기 팸투어는 2016 올해의 관광도시로 선정된 제천시 초청으로 제천 관광마일리지와 문화관광 농촌 먹거리를

홍보하기 위해 진행하는 팸투어를 다녀와서 작성한 후기포스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