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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박경리토지문학공원 원주 가볼만한곳 원주힐링여행지추천

美知 2016. 12. 9. 08:52

 

원주 단구동 중심지에 위치한 박경리토지공원은 박경리선생님의 생가가 있으며

주변은 산책로가 있고토지문학관이 시설되어있다.누구나 쉽게 찾을 수있을만큼이나

가까운 곳에 있어 식당을 이용한 후 잠깐 둘러볼 수있는 위치에 있다.

 

 

박경리토지공원내 북까페 1층에서는 박경리 선생님 관련 서적을 볼수있으며 2층은 지역의 최희응 선생님이

평생동안 수집해 기증한 일제강점기 교과자료를 통해 토지의 주요시대적 배경을 볼 수있는 특별 전시장이다.

 

 

 

 

동학농민혁명에서부터 8.15해방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한을 희망으로 풀어낸

한국문단의 기념비적인 작품 대하소설 "토지"의 4부와 5부가 집필되고

완간된 곳으로 작가 박경리 선생님의 삶과 문학세계를 탐방할 수있는 장소다.

 

 

박경리 선생님이 1980년 서울을 떠나 원주의 이곳 단구동에 정착해

살았던 옛집과 정원,집필실을 원형대로 보존하였고 주변은 소설 "토지"의 배경을

세가지 테마로 나눠 (평사리마당,홍이동산,용두레벌)로 꾸몄다.

 

 

또한, 2010년 8월15일에는 박경리문학의집을 개관하여 대문호의 일상과 삶의 자취는 물론,

평생을 집대성한 거대한 문학의 산맥을 한자리에서 모두 느끼고 가게하였다.

 

민족의 대서사시 "토지"가 완성된 집,박경리 선생님이 손수 가꾸던 텃밭과 나무등 생활하시던

자취를 그대로 엿볼 수있는 옛날의 그 집으로 초대한다.(옮긴글)

 

 

 

 

 

 

 

 

 

 

박경리 제2회 한국여류문학상 제6회 호암예술상(1996) 금관문화훈장(2008)

대표작품 토지,불신시대,암흑시대,표류도 ,시장과 전장,파시,김약국의 딸들,성녀와 마녀

 

 

1926년 10월 28일 경상남도 충무시(지금의 통영)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박금이.

1945년 진주고등여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김행도 씨와 결혼해서 이듬해 딸 김영주를 낳았다.

1950년수도여자사범대학 가정과를 졸업한 후 황해도 연안여자중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6.25 전쟁통에 남편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되었다가 죽고, 연이어 세 살 난 아들을 잃게 된다.

이후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1969년부터 한국현대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대하소설 「토지」연재를 시작하여,

1994년 8월 집필 26년 만에 「토지」전체를 탈고하였다.

 

 

 

1980년 지금의 박경리문학공원 자리인 원주시 단구동 742번지에 정착하여 창작활동을 계속하였다.

1992년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에서 소설창작론을 강의하였고, 1995년 같은 대학교 객원교수로 임용되었다.

1996년토지문화재단을 창립하고, 이어서 1999년토지문화관을 개관하여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토지문화관은 문학인들에게 창작공간을 제공하고, 다양한 학술 문화 행사를 기획, 개최해 왔다.

2008년 5월 5일 폐암으로 타계하여 고향인 통영시에 안장되었다.(옮긴글)

 

 

 

 

 

 

 

대표작품인「토지」1부는 『현대문학』에 1969년 9월부터 1972년 9월까지 연재되었으며,

「토지」2부는 『문학사상』에 연재(1972년 10월∼1975년 10월)되었다. 1973년 「토지」1부가,

이듬해인 1974년 「토지」2부가 삼성출판사에서 간행되었다. 1977년 1월부터 「토지」3부를 『주부생활』,

『독서생활』, 『한국문학』 등에 연재하였다. 1980년「토지」3부가 삼성출판사에서 간행되었다.

「토지」4부는 1983년 연재를 시작하여 여러 매체를 거치면서 1988년까지 연재되었다.

 

 

 

「표류도」로 제3회 내성문학상을 수상했다. 1965년「시장과 전장」으로 제2회 한국여류문학상을 수상했다.

「토지」1부로 1972년 제7회 월탄문학상을 수상했다. 1990년 제4회 인촌상을 수상하였고,

1994년「토지」 완간을 계기로 이화여대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 수여,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 올해의 여성상 수상,

유네스코 서울협의회에서 올해의 인물 선정 등의 기록을 남겼다. 1996년 제6회 호암예술상을 수상했고,

칠레 정부로부터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문학 기념 메달(Gabriela Mistral Commemorative Medal)를 수여했다.

사후에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