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여행/원주--문막

원주 여행 가볼만한곳 치악산아래 국형사 관음사 성문사 석경사 절 문화탐방 운곡원천석묘역 충렬사 역사탐방 당일여행 원주스토리블로그공모전

美知 2015. 10. 12. 17:34

 

원주는 사통팔달의 교통도시이며 강원도의 중심지로서 큰 재해없는 편리한 도시입니다.

적절한 농경과 함께 발달된 도시가 어울어져 있는 문화도시이기도 합니다.사방에는 치악산이 드리워져 있어

사계절 모두 자연을 벗삼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죠~

그리고 관광도시로 군과함께하는 축제 댄싱카니발축제가해마다 열리는 국제적인 도시이기도 합니다.

또한, 안도타다오 건축물을 볼수있는 뮤지엄산 갤러리와 간현의 레일파크가 있고 치악산아래

계곡을 끼고 있는 유원지가 제법 많아 여름에는 산과계곡을 즐길수 있는 천혜자연관광지로 사랑받는 곳입니다.

 

마침, 원주스토리블로그공모전이 있기에 이곳을 소개하고자 가끔 스쳤던 치악산 주변의 절과 역사탐방을

계획하여 가을햇살 가득한 날 힐링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원주시내에서 행구동과 황골 가기위해 치악교를 지나 올라가면 행구동 수변공원이 나오며

회전교차로와 삼거리가 나옵니다. 오른쪽 방향은 국형사와 관음사를 갈수있는 행구동,

왼쪽방향은 석경사와 운곡원천석선생의 묘역을 가는 길목으로

원주 관광 일번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행구동은 로드카페가 즐비하여 가족과 연인들이 잠시 쉬어 갈수 있는곳으로서

이곳또한 무료개방을 하고있어 쉽게 방문하여 둘러볼 수있는 좋은점도 있습니다.

그럼 함께 둘러보실까요~?

 

원주시문화관광 홈페이지 http://tourism.wonju.go.kr/hb/tour

 

 

이렇게 이정표를 보고 조금만 올라가면 두갈래로 갈라져 있고 어느곳을 먼저 갈지 결정을 하고 가면 됩니다.

일단 저는 오른쪽 국형사와 성문사를 먼저 보기로 결정하고 .....

 

 

행구동 방향으로 일단 가서, 걷고 싶은마음에 차를 적당한 곳에 세워두고 천천히 올라가니 국형사가 나옵니다.

국형사 아래 약수터가 있어 물한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국형사에서 잠시 머물며 이곳을 둘러보기로 하였습니다.

특히,절에 들어서면 살랑바람에 은은히 들려오는 풍경소리는 절을 찾는이의 마음을 한층 정화 시켜줍니다.

 

 

국형사의유래

국형사는 조선의 오악중 동악에 속하는 치악산 천연 송림에 자리잡고 있는 전통사찰이다.

지금으로부터 1500여년전 신라 경순왕때에 무학도사께서 창건하였으며,

당시는 고문암 혹은 보문암이라 칭하였다. 국형사로 명명하게 된것은 조선 숙종때 어명으로 그 명칭이 바뀌었다.

 

 

국형사는 조선 후기때는 폐사되었으나, 서기 1907년에 중창되었고 치악산 구룡사에서

지내던 산신제가 예부터 국형사에서지내온것을 들어 다시 국형사에서 산신제를 지내게 하였다.

 

 

6.25이후 산림훼손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하여 도끼노장 전용호 스님의 역할이 마을 촌노들 사이에 전해지고

국형사의 산신각인 동안단은 조선태조때 나라를지키는 동악신들을 봉사하기 위하여 만들어진다.

 

 

단으로써 원주,평창,정선,영월,횡성 등 5개 군수가 모여 매년 제향을 봉행하엿다.

이와같이 치악산제는 마을단위의 동신제가 아니라,나라에서 향과 축문을 내려 치제한,

국토의 동악에서 치러졌던 산제였던것이다.(원주의 역사와 문화유적 참조)

 

 

유서깊은 전통사찰의 역사와 국태민안을 빌었던 5악제중에 동악제라는 국가적 제사를 봉사해 왔다는 점은 국형사의

명명에서도 드러나듯이, 그역사적 위상과 풍수적 천혜의 위치로 국형사는 오랜 전통속에 남다른 의미를 지녀오고 있다.

풍수의 선조로 불리는 도선 이후 무학대사가 계룡산에 머물며 산신을 현몽한뒤,대사가 왕에게 진언하여 오악단을 세웠다고 한다.

중악으로 계룡산 신원사에 중악단이 세워졌으며 서악으로는 황해도 구월산에 , 남악단은 지리산에, 북악단은 묘향산에

그리고 동악으로는 치악산 국형사에 동악단이 세워졌으니 그 풍수적 자연 천혜의 위치에

국형사의 도량이 위치하고 있음이 새삼주목되는 바이다.

 

 

이런 자연 천혜의 풍수와 얽힌 이야기들이 국형사에 전해 내려오는바 조선2대 정종의

둘째 희희공주는 폐병이 들어 치료가 불가능해지자,이곳 국형사에 와서 100일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하루는 공주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나는 동악의 신령이다 네가 정성껏 기도하는 것이갸륵하니 곧 너의 병이 나을것이다.'

고 하였다고 한다.그후 100일 기도가 끝나자, 공주의 병이 말끔히 나았는데 그때 마신 약수터가

지금도 산신각인 동악단 너머에 있어, 지금도 많은 이들이 이 약수의 효험을 믿고 길어다 먹는다.

정종은 딸의 쾌유에 기뻐하며 절을 크게 지었음은 물론 산신을 모시는 동악단에서

봄,가을로 호국대제를 지내게 하였다는 것이다.(옮긴글)

 

산신현몽 희희공주 기도발원

 

국형사를 둘러보고 조금 내려오는길에 개인이 운영하는 민속박물관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많은 어려움속에 운영이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날도 방문을 하니 어려운 가운데

운영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던 마음이었습니다.

 

치악산 민속박물관

 

산새가 아름다운 치악산아래 먼저 국형사를 둘러보고 돌아 내려오다보면 성문사로 들어가는 문이 보입니다.

성문사도 잘 정비된 길따라 약 10여분 걷다보면 시원스런 파란 잔듸 뒤쪽으로 성문사가 있습니다.

 

 

 

성문사 강원도 원주시 고문골길 77 - 47 천태종

성문사는 1969년 10월 김태룡 불자의 주도로 신도 포교 준비를 시작해

이듬해 신도 포교소 결성을 위한 발기인을 구성하고, 같은 해 10월 원주 포교 연락소를 설치하였다.

71년 조정남 불자집에서 첫 법회를 봉행하였으며 원주 지역에 천재 법음이 끊어지지 않았음을 알렸다.

이어 12월 원주 원성지회 승인을 받고 신도회를 발족하고 이후 72년 원주시 학성 2동 노동회관,

73년 원주 오도관으로 법회 장소를 옮겼으며, 76년 4월 성문사 현판식을 갖고 관음회를 조직,

관음회의 노력을 통해 현 부지인 행구동으로 이전, 이같은 외형적 성장과 함께 지역사회 봉사와 각종 신행단체 설립을

통해 내실을 다지는데 노력, 2007년 호저면 고산리 마을과 자매 결연을 맺어 교류하고 있다고 한다.(옮긴 글)

 

성문사의 주변에는 산책을 할 수있는 코스가 마련되어 있어 나무그늘아래 잠시 산책을 해보는 것도 좋은듯합니다.

 

 

조금더 세심하게 둘러보고 싶다면 경내 조감도를 미리 파악하고 둘러보면 시간도 절약될 것입니다.

 

 

행구동 같은방향의 국형사와 성문사를 둘러보고 조금만 내려오다가 우측으로 돌아서는 길이 나오는데

이번에는 차를 갖고 움직여야합니다.물론 걷는 여행코스라면 차를 안전하게 세워두고 다니는것도 좋은방법이예요~

이렇게 로드카페따라 올라가면 관음사 가는 작은 길이 나옵니다.길따라 가면 관음사에 도착하게 됩니다.

 

 

원주시 행구동 치악산아래 관음사는 108대 염주 2벌이 봉안되어 있으며, 이곳에 봉안된 108대 염주의 크기가 직경짜리의

큰것과 직경의 작은것으로 되어있고 이 108대 염주는 재일한국인 3세 사업가인 임관지씨가 제작하여 보관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날은 108대염주를 모신곳이 오픈되지 않아 실내를 직접 볼 수없어 아쉬움곳에 불상이 있고 불경이 흐르는곳

대웅전만 들여다 보았고 누군가 기도를 하고 돌아나온 흔적이 있어 마음의 염원을 간절히 기도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이것은 식수가 아니라 손을 씻는곳으로 세상을 살면서 네모졌던 마음이

깍이고 깍여서 둥글어진다는 의미라고 들었습니다. 삶의 이치를 그대로 느끼게 해주네요~^^

 

 

행구동 양쪽방향의 절문화를 탐방하고 이번에는 황골방향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이곳으로 가면 아기자기한 석경사가 있고 운곡 원천석의 묘역과 영정을 모신곳이 있으며

충렬사가 있기에치악산외 가볼곳이 그다지 없다는 편견을 버리게 된 곳이기도 합니다.

 

 

운곡원천석묘역,창의사,충렬사,석경사가 인근해 있는 이곳은 잠시 머물다 가기에 아주 좋은 곳이었습니다.

 

 

석경사

화려하지도 않고 아담한듯한 예쁜절이었습니다.사실 종교는 기독교라 절을 잘 안갔던 사람이다보니

갈일이 있어도 괜시리 타파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언젠가부터 절은 문화라고 생각되어

쉽게 접근할 수 있었고 그렇게 문화탐방을 하면서 둘러보고 싶은곳이 많아졌습니다.

 

 

팔작지붕으로 된 석경사는 치악산에 둘러싸여 있어서일까요~? 아늑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으며,

햇살이 좋은날에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져 이곳에 오래머물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석경사 옆 언덕위에는 운곡 원천석선생의 시조단이 위에 있었고 내려다본 석경사는 한폭의 그림과도 같았습니다.

 

 

원주원씨 시조단

시조단의 기본구조는 봉분을 응용한 형태로본단 비석은 '법천사지 지광국사 현묘탑비를 축소재현하였다.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돌을 세우고 왕관 모양의 머리돌은 네귀가 바짝 들려진채로 귀꽃을 달았으며 그 중심에 연꽃무늬가

조각된 3층의 보주를 얹어 놓아 꾸밈을 더하였다.

 

 

시조 본단의 뒤에는 봉황을 ,소목단의 뒤로는 향을 사르는 비천상을 음각하여 원문의 무궁한 번영과 조상을

기리는 후손들의 지극한 정성을 표현하고자 하였다.또한 본단 좌우에는 시조단을 수호하는 12지신상과 망주를

전면 중앙에는 석등을배치하여 엄숙하고 장엄한 제의 공간으로서 시조단이 되게 하였다.(옮긴글)

 

 

창의사 원주시향토유적 제2008-2호

고려말 조선 초의 은사로 알려진 원천석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선생의 본관은 원주, 자는 자정,호는 운곡이다.선생은 고려 말으 정치적 어지러움을 보고 원주 치악산에 은거하면서

시국을 개탄하였으며, 특히 그의 저술인 [운곡지사]에는 백성들을 사랑하는 애민정신의 사상과 철학이 깊이 녹아있다.

 

 

선생에 대한 칭송은 조선시대 이래로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져 오고 있으며 강원도와 원주시 차원에서

 '강원의 얼' '원주의 얼' 로 선양하고자 2006년 8월31일 사당을 건립하여 원주를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로 숭상하고 있다.

 

 

사당은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이며 매년 양력 4월23일 운곡제를 봉행하고 있다.(옮긴글)

 

 

운곡 원천석묘역 강원도 기념물 제75호 강원도 원주시 행구동 산37

 운곡선생은 일찍이 이방원을 가르친바 있었다.이방원이 조선왕조 3대왕으로 즉위하여 수차 출사할 것을 권하였으나

끝내 응하지 않고 치악산에 들어가 30여년동안 절의를 지키며 초근목피로 생활하였다.

선생은 위대한 스승으로 후세인들의 추앙을 받았으며, 칠봉서원에 배향되었다.

 

 

운곡 원천석선생의 회고가 '청구영언'에 수록되어있는 시조이다.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로다 오백년 왕업이 목적에 부쳤으니 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겨워 하노라

(옮긴글)

 

원천석선생 묘역까지 걸어올라가는 길에  선생의 업적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는 안내표지판이

있어 올라가는 동안에 어느새 선생의 업적에 대해 알고 묘역과 충렬사를 둘러볼때도 충분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올라가는 잠깐이었지만 시원한 숲속내음을 맡으며 걸었던 이길은 기분좋은 힐링지였습니다.

 

 

운곡 원천석선생의 묘역과 시조단을 둘러보면서 출세에 욕심내지 않은 업적에서

많은걸 느꼈고,석경사와 시조단 그리고 원천석선생묘역이 함께 인근해있어서

걸으며 한적한 절문화를 보고 힐링할 수있는 이곳은 가끔 걷고 싶을때 또 가고 싶은 곳입니다.

 

 

충렬사 원주시 향토유적 제2009-1호 원주시 행구동 402-3번지

충렬사는 1291년 (고려 충렬왕 17년)의 합단적 침입과 1592년(조선 선조25년)

왜적의 침략에 맞서 국권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순국선열의 숭고한 호국정신이 깃들어 있는곳이다.

 

 

1290년 원나라 반적 합단적이 고려의 동북변방을 침입한 이후 1291년 철령을 넘어 교주도(강원도)로 난입하여

양근(양평)을 점령하고 원주에 이르러 치악산 영원산성을 공격하자, 원주별초에 소속되어 있던

항공진사 원충갑은 결사대 중산, 방호별감 복규,흥원창판관 조신,별장 강백송, 원주관리 원현.원종수, 유생 안수정등 다수의

원주사람들과 힘을 합쳐 이들을 물리쳤다.이로부터 합단적은 예봉이 꺾여 여러고을에서도 굳게 방어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러한 원충갑들의 공로로 원주에 부과되던 각종 부역과 잡공이 3년동안 면제되었다.

 

 

일본국 풍신수길의 조선침략으로 촉발된 임진왜란은 유사 이래 최대의 국가적 위기상황이었다.적장 모리길성이

이끄는 왜적이 영동지방을 짓밟고 남한강 상류를 따라 평창,영월,주천,신림을 거쳐 원주로 침입하자 원주목사 김제갑은

병사와 고을 백성들을 모아 영원산성에서 결전을 펼쳤으나 중과부적으로 영원산성은 함락되기에 이르렀다.

깁제갑 원주목사는 항복할 것을 강요하는 왜적에게 굴복하지 않다가 끝내 죽음을 당하였고

그의 작은아들 김시백 또한 아버지를 곁을 떠나지 않고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비보를 들은 부인 전주이씨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니 때는 1592년 8월25일이었다. 김제갑 목사와 아들

그리고 부인은 충성과 효도와 정렬로서 순절하여 충.효.열의 표상이 되었다.

 

 

이에 앞서 강원도 조방장 원호는 1592년 5월 여주 신륵사에서 왜적을 크게 무찌르고 패주하는 적을 원주 구미포에서 섬멸하여

서울로 향하던 왜적의 진로를 차단하는 전공을 세웠고 이러한 승첩으로 경기.강원 양도조방장 겸 여주목사로 임명되었다.

이후 왜적에 의해 철원.평강.김화등이 유린당하자 병사를 이끌고 김화에 이르러 분전하였으나 왜적의 형세를 당할 수없어

왜적에게 굴복되기전에 절벽 아래로 투신하여 자결하였다.충렬사와 관련된 유물로 1670년 당시의 사액현판은

1871년 충렬사가 없어지면서 충북 괴산 김제갑 원주목사의 불천지위 사당에 후손들이 보관해 오다가

1009년 5월7일 충렬사 복원건립 준공에 맞춰 원주시에 기증하였다.(옮긴글)

 

 

김제갑 원주목사 충렬비  원주시향토유적 제 2012-1호

1592년 임진왜란 당시 김제갑 원주목사의 순절을 기리기 위하여 1670년(현종11년) 3월에 건립된 비석이다.

 원주사람정석형이 지은 비문에는 치악산 영원산성에서 왜적과의 전투상황과 함께

김제갑 목사를 찬양하는 글이 기록되어 있다.(옮긴글)

 

 

충효열각 1592년 임진왜란 당시에 김제갑 원주목사와 아들 김시백.부인 전주이씨가 왜적의 침입에 맞서

치악산 영원산성에서항전하다가 순절한 사실을 기리기 위해 조정에서 내린 정려문이다.(옮긴글)

 

 

충렬사

 

 

원주에서 일어났던 역사와 함께 이뤄진 문화와 치악산 하늘아래 절문화 탐방을 하면서

아직도 많은 곳을 가보지 못한 아쉬움속에 원주여행 또 가볼곳을 기약하며,

이번여행을 통해 몰랐던 원주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고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원주를 여행할때 미리 어느곳을 방문할지 찾아가보면 시간을 절약하며 좀 더 많은 곳을

둘러볼 수있습니다.조금의 도움이 될 수있는 몇가지  원주관광을 올려봅니다.

 

원주시지정향토유적:경천묘,창의사,충렬사,원호묘역,충효사,김제갑충렬비

 

원주팔경:구룡사제1경,강원감영제2경,상원사제3경,치악산미륵돌탑제4경,간현관광지제5경,

영원산성제6경,용소막성당제7경,미륵산미륵불상제8경

 

상기 포스팅은 원주시스토리블로그공모전에 응모작으로  치악산하늘아래 가볼만한곳을 찾아

절문화탐방과 원주의역사를 알수있는 역사탐방을 다녀온후 포스팅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