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단팸투/남원팸투어

남원여행 꼭가볼만한곳 광한루 영화상의원촬영지로 각광받는곳 오작교를 걸어보다

美知 2015. 1. 29. 18:47

 

남원여행에서 가장 행복한 여행은 역시 남원광한루에서 발길을 머무는 것~

워낙 많은 정보를 통해 익히 알고 있었기때문에 낯설지 않은 남원광한루에서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금도 편안하고 좋았던 곳이었습니다.

 

 

시인묵객들은 궁궐에는 경회루가 있고, 지방에는 광한루와 더불어 평양의 부벽루,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더불어 우리나라 4대 누각이라 불려지는데 그 중 으뜸은 광한루라 했다.
경회루는 궁궐의 건물로 황실에서 지은 곳이며 지방의 누각 중 평양의 부벽루는 애석하게도 아직은 가볼 수 없는 곳이고,

진주 촉석루는 안타깝게도 6ㆍ25 때 불에 타 지금의 건물은 1960년 5월경 복원한 것으로 복원 역사가 짧으며,

밀양의 영남루 역시 1844년에 지어 복원 역사가 길지 않다.

그러나 광한루는 1419년에 지어

1597년 정유재란 때 불탔으나 1626년에 복원한 건물로 복원 역사 면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광한루원은 경복궁 경회루의 지원과 전남 담양군에 있는 양산보가 조성한 소쇄원과 함께 한국의 경원을

 대표할 만큼 우수하며 독특한 조경양식이 탄생하는 모체가 되고 있다.

 

 

위치 : 전라북도 남원시 요천로 1447번지(천거동)

규모 : 88.45㎡ (정면 6칸, 측면2칸 겹처마 팔각지붕 5량 굴도리 집)

조성년대 : 1971년 5월 21일

완월정은 1971년에 신축된 수중누각으로 1963년 채기묵 남원군수의 재임(1962년 4월 5일~1963년 5월 31일)

당시부터 연차계획을세워 경내를 확장하고 주변을 정화하는 과정에서 증설된 건물이다.

1969년 기존 호수를 확장하여 인공 방장형 호수를 축조한 후 수중누각으로 신축한 것인데 2층 누각이다.

누각의 이름은 옛날 남원성 남문의 문루(門樓)인 완월루(翫月樓)에서 따온 것이다.

동학농민동기(1894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남원성의 남문인 완월루가 지금의 스탠다드차터드은행 네거리에 있었다.

 

옛날 옥황상제가 계식 옥경에는 광한전이 있으며, 그 아래 오작교와 은하수가 굽이치고 아름다운 선녀들이

계관의 절경 속에서 즐겼다는 전설이 있다. 이 전설에 따라 광한루는 천상의 광한전을 재현한 것이며,

이 완월정은 지상인이 달나라를 즐기기 위하여 전통 조선식 누각을 세워 광한루원의 절경을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으며,

해마다 이 누각 수중무대에서 우리나라 대표적인 민속 축제인 춘향제가 열리고 있다

 

정원의 사상적, 역사적 배경은 자연적 사고방식 즉, 신선사상과 음양오행사상, 풍수지리사상

또는 수심양성의 도로 표현되는 송, 죽, 국, 매의 사절과 유교의 선비사상이다. 그중에서도 신선사상이

가장 크다고 불 수 있으며 이러한 신선정원의 양식은 생성시기인 조선시대의 제도적인

원인에 기인하여 유교문화가 지방으로 분산되면서 형성되었다.

옛적 우리 조상들은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조성에

세심한 배려를 하여 신선이 사는 이상향을 이 땅에 건립하고자 하였으며, 이러한 생각은 분합문을

달아 열어놓고 지내어 건물이 탁 트이게 처리하였다. 또한 누원 앞에 호수는 은하를 상징하도록 하여

하늘의 옥황상제가 사는 곳처럼 꾸며서 월궁의 광한청허부와 같다고 한 광한루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정원은 인공적인 멋을 가리지 않고 토양 구릉을 자연 그대로 살렸으며, 드문드문 자연석 고인돌을 구릉에

그대로 놓아 작은 언덕 공간처럼 하고, 정원수도 전지를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자라도록 하여

흡사 숲속에 있는 착각이 들게 한다. 이러한 연유로 건축기술과 사회상, 생활, 이상향 등 당시의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명승지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현재의 누원 모습은 누원 근처 시장이 불타고 옮긴 것을 비롯하여 수차례 확장 사업을 하면서

차례로 근처의 부지를 매입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광한루원은 근세 전기에 조영된 대표적인 정원으로 꼽히고

있는데 한국의 독특한 조경양식이 탄생하는데 모체가 되고 있으며 정원을 대표할 수 있을 만큼 질적으로 우수하고

통시대적 문학사에 나타난 정원양식을 표현하고 있어 전통예술을 계승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

광한루가 다른 누각과 비교할 수 없는 점은 조선후기 문예부흥기라 불리 우는 영정조시대에

창작활동이 활발하여 판소리계 소설 <춘향전>의 무대이며 국악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광한루원 앞에는 동서 100m, 남북 59m에 이르는 정방형의 호수와 호수 속의 3개의 섬(삼신산),

그리고 서편에 4개의 홍예로 구성된 오작교로 구성되어 있다. 오작교는 평교지만 교각의 형태가 원형으로 된

홍예교로 누정원을 구성하는 구성물의 일부로 처리되어 있는데 직선적이고 평탄한 노면에 율동감을 주어

경관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요소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호수에 직녀가 베를 짤 때 베틀을

고이는 돌인 지기석을 넣고 견우가 은하수를 건널 때 쓰는 배인 상한사를 띄워 칠월 칠석의

전설의 은하수와 오작교를 상징한다.

호수는 현재 상태에서 1:2의 비를 갖는 장방형으로 축조되어 있으며 그 안에 3개의 섬이 동서방향으로

거의 같은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호수 북쪽 광한루 앞에는 돌 자라가 동남방향으로 향해 놓여 있어

신선사상에 입각한 지킴이의 기능을 갖고 있어 전체적으로 광한루원의 구성은 넓은 은하세계,

즉 천체우주를 상징하고 있다.

 

춘향사당

 춘향의 굳은 절개를 기리기 위해서 건립한 사당이다.사당의 대문을 단심문이라 하는데 이는

[임향한 일편단심] 이란 의미이다.사당의 중앙에는 [열녀춘향사]하는 현판이 있고 사당안에는 춘향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이 사당에서 축원을 빌면 백년가약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많은 참배객이 찾고있다.

 

방장정의 방장은 전라감사 송강 정철이 삼신도를 조성함에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방장정이

세워진 시기는 1963년부터 시작된 광한루원 확장 정화계획에 따라 당시 남원군수 이화익의 창안으로 도편수

이한봉이 건축하였다. 그 모습을 보면 기단부는 형성되어 있지 않고 원형의 가공초석위에 복석형태의

화강석을 얹고 위에 기둥과 귀틀을 세워 장마루를 깔았다.

또한 누난간은 설치되지 않고다소 높은 듯한 기둥위에

계두, 양서, 수서 등을 걸치고 주심도리를 높게 설치하였으나 칸사이가 좁은 관계로 화반은 설치 하지 않은

듯하다. 천장은 육각형의 소란대를 걸쳐 우물반자를 설치하였고 연목과 부연을 둔 겹처마를 형성하고 있으며

단청은 기둥머리부터금모로 단청을 하였다.

 

월매의집

조선시대 우리나라 고전 [춘향전]의 무대가 된 집이다. 남원 부사의 아들 이몽룡이 광한루 구경길에

그네를 타고 있던 성춘향에게 반하여 사랑을 하게 되었다.이 집은 후에 두사람이 백년가약을 맺은 집이다.

춘향의 어머니 이름을 따서 월매집이라 하였다.

# 주요행사 1 전통혼례식재현

일시 : 매년 4월 ~ 6월 장소 : 월매집

내용 : 신랑과 신부의 아름다운 사랑을 담은 전통혼례 재현 및 신청에 의한 전통혼례를 실시합니다.

접수 및 안내전화 : 063-633-5353 관광발전협의회

광한루에서는 잊혀져 가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복원하여 일반인들에게 전시,

교육하자는 취지에 따라 관혼상제의 하나인 전통혼례를 재현하여 선보이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일반인들 가운데서 전통혼례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차츰 늘고 있는데, 관광발전협의회에서는 일반인

들의 신청 접수를 받아서 혼례식을 대행하고 있습니다.

 

#주요행사 2 신관사또 부임행차 행렬

일시 : 매년 4월 ~ 10월(7월, 8월 제외), 매주 토요일, 일요일 / 14시

장소 : 광한루원 경내

남원여행 꼭 가볼만한곳 광한루를 돌아보며

 

# 주요행사 3 민속놀이 체험장 운영

일시 : 연중

내용 : 널뛰기, 그네뛰기, 투호놀이, 제기차기 등 운영합니다.

춘향관

춘향관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고전소설인 춘향전을 소개하고 열녀 춘향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길이

전하기 위해 1992년에 지었다.춘향의 일대기를 한눈에 알수있도록 박남재 화백의 유화 9점과 춘향전

고서, 서화류,장신구등을 저시하고 있다.현판은 강암 송성용의 작품이다.

남원고을춘향

 조선 숙종대왕 즉위 초 전라도 남원에 삼남의 명기 월매라는 퇴기가 있었는데 성참판과 살았으나 슬하에

일점혈육이 없어 지리산 산신께 지성으로 빌어 딸하나를 얻었으니 그이름이 춘향이라...

어려서 부터 어질고 착하며 글읽기에 힘써 예모정절을 일삼으니 그녀의 효행이 남원골에 가득하다.

 

오작교를 밟으면 부부 금실이 좋아진다는 전설이 있고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

어린곳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처녀가아닌 사람이 다리를 건너면 다리가 무너진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처럼 광한루와 오작교는 전설과 사랑이 어우러져 있어, 춘향이가 단오날 그네를 뛰는 것을 광한루에 올라앉아

이도령이 보고 첫눈에 반해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것처럼 사랑하는 연인들의 다리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오작교 선조15년(1582)에 남원부사 장의국은 광한루를 수리하면서 다리를 새로놓고 오작교라 부르게 됐다.

그 이후 광한루는 정유재란때 불타1626년 복원됐지만 오작교는 처음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오작교는 길이 57m, 폭 2.4m, 4개의 홍예경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존하는

연지교중 국내에서는 규모가 가장 크다.

 

둘의 만남이 너무 애닳아 이날에는 지상의 까치와 까마귀가 모두 은하수로 올라가 다리를 만들어 둘을 만나게

했는데 까마귀와 까치가만든 다리를 밟고 만나는 견우와 직녀의 눈물이 비를 만들었다.

칠월칠석날이 되면 비가 오고 까마귀와 까치를 볼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며 까치의 머리가 흰 것은

오작교가 된 까치의 머리를 견우와 직녀가 밟아 벗겨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광한루원 홈페이지에서 옮김]

 

 

광한루원 홈페이지

http://www.gwanghallu.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