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단팸투/전북팸투어

2012년 '전북방문의 해' 전주편- 전주한옥마을에서

美知 2012. 3. 8. 22:21

 

 

 

            전주한옥마을  http://hanok.jeonju.go.kr/

 

"아~~~ 빨리 돌아보고 싶다" ...그런 마음이 가득하고 설레임으로 출발한 전주 한옥마을

 

        을사조약(1905년)이후

          대거 전주에 들어오게 된 일본인들이 처음 거주하게 된 곳은 서문 밖,

지금의 다가동 근처의 전주천변이었다.

서문 밖은 주로 천민이나 상인들의 거주지역으로 당시 성안과 성밖은 엄연한 신분의 차이가 있었다.
성곽은 계급의 차이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존재했던 것이다. 양곡수송을 위해 전군가도(全郡街道)가
개설(1907년)되면서 성곽의 서반부가 강제 철거 되었고, 1911년말 성곽 동반부가 남문을 제외하고
모두 철거됨으로써 전주부성의 자취는 사라졌다.
 

 

이는 일본인들에게 성안으로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으며, 실제로 서문 근처에서
행상을 하던 일본인들이 다가동과 중앙동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이후 1934년까지 3차에 걸친 시구개정(市區改正)에 의하여 전주의 거리가 격자화되고
상권이 형성되면서, 서문일대에서만 번성하던 일본 상인들이 전주 최대의
상권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상황은 1945년까지 지속되었다.

 

1930년을 전후로 일본인들의 세력확장에 대한 반발로 한국인들은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는 일본인 주택에 대한 대립의식과
민족적 자긍심의 발로였다. 1930년대에 형성된 교동, 풍남동의
한옥군은 일본식과 대조되고 화산동의 양풍(洋風) 선교사촌과 학교, 교회당 등과 어울려
기묘한 도시색을 연출하게 되었다. 오목대에서 바라보면 팔작지붕의 휘영청 늘어진 곡
선의 용마루가 즐비한 명물이 바로 교동, 풍남동의 한옥마을인 것이다.
 

 

한옥마을 관광안내소에서 태조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보이는 곳이 오목대이며,

오목대와 연결되어 있는 구름다리를 따라 내려가면 이목대가 나온다.

이성계가 남원 운봉 황산에서 발호하던 왜구 아지발도(阿只拔道)의 무리를 정벌하고,

승전고를 울리며 개선하여 개경으로 돌아갈 때 전주의 이곳에서 야연(野宴)을 베풀었다는 곳이다.

여기에서 이성계는 한나라를 창업한 유방이 불렀다는 대풍가를 읊었다.

즉 자신의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는 야심을 넌지시 비쳤다.

그러자 이를 모를리 없는 종사관 정몽주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홀로 말을 달려 남고산성 만경대에 올라

비분강개한 마음을 시로 읊었다. 현재만경대에는 그 시가 새겨져 있다. 오목대와 이목대에는

고종의 친필로 새긴 비석이 세워져 있고, 비각이 건립되어 있다.

 

 

 

 

 

 

 

 

 

 

전주한옥마을의 상징인 경기전. 경기전은 조선이 건국되자 태조 어진을 모시기 위해

태종 10년(1410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이후 경기전은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광해군 6년(1614년) 11월에 중건됐다.

경기전에는 두 개의 숨은 문화코드가 있는데,

하나는 경기전 정문 밖 도로가에 있는 하마비요, 또 하나는 진전의 거북이 이야기이다.

하마비에는“지차개하마 잡인무득입(至此皆下馬雜人毋得入)라고 쓰여져 있다.

이곳에 이르는 자는 계급의 높고 낮음, 신분의 귀천을 떠나 모두 말에서 내리고

잡인들은 출입을 금한다는 뜻이다.

조선왕조의 상징인 태조어진을 봉안한 곳이어서 이 수문장의 위력은

대단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진전에는 거북이가 붙어 있는데,

경기전을 완성한 목공이 그 영원함을 위해 지붕에 암수 두 마리의

거북이를 올려놓았던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거북이가 물에서 살고 진전이

목조건축인 점에서 화재막이용 거북이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경기전에서 보이는 앞산 승암산이 화산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고 한다.

 

가을 풍경이 특히 아름다운 경기전, 경기전은 주변 경관이 수려해 역사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주목받는 곳이기도 하다.

 

 

 

 

 

 

 

 전주 전동성당

한옥마을 초입에 있는 전동성당은 소박하고 아담하다.

전동성당은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1791년 신해박해 때에 처형당한

풍남문(豊南門)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건립됐다.

1907년부터 1914년에 걸쳐 세워진 전동성당은 순교지를 보존하고 있는 신앙의 요람이다.

처형지인 풍남문 성벽을 헐어 낸 돌로 성당 주춧돌을 세웠다고 한다.

호남 최초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서양식 건물로,

순교지를 알리는 머릿돌과 순교자 권상연과 윤지충, 유중철·이순이 동정 부부를

채색화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눈길을 끈다.

곡선미를 최대로 살린 로마네스크 및 비잔틴 양식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이 동양에서

제일가는 성당건물 중의 하나이다.

 

 

 

아침 햇살이 살며시 비취는 아름다운 아침이었습니다.

 

 

 

태조로 쉼터에서 잠시 쉬다가 가고 싶은맘 굴뚝...

 

 

 

전주 한옥마을을 돌아보면서 느껴진 편안함과 아늑함이란 이루 말할 수없었습니다.

시간에 쫓기어 깊이를 많이 느낄 수없는 아쉬움속에 이다음을 기약하고 다음 여행지로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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