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단팸투/전북팸투어

2012 전북방문의해 팸투어 시리즈-익산 미륵사지석탑 편

美知 2012. 1. 31. 20:14

 

 

 2012년 1월 여행블로거기자단 첫 팸투어를 전북 익산을 시작으로 취재가 시작되었다.

2012년은 '전북방문의 해'로서 전북을 많이 알리기 위해 전북 지자체가 주관된 사전 홍보팸투어...그리고 처음으로 가본 곳 익산

거리는 멀었지만 설레였던 여행이었다....[2012년 1월 28일~1월29일]

고도 익산은

익산 역사유적지구(백제 무왕대에 조성된 왕도문화유산이 집중분포하고 있는 익산의 역사묺화유적지구)

고대사회에서 왕도란 너른 평야와 원활한 수로교통의 여건을 바탕으로 궁성과 사찰,왕릉,성곽 등의

기반시설을 갖춤으로써 그 기능이 수행되었던 도시이다.

익산 미륵산과 용화산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는 미륵사지.왕궁리유적 등 백제문화유산은 7세기 전반, 이 지역이 금강과

만경강,금만평야를 자산으로 하는 지리저 환경을 바탕으로 고대 정치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하였음을 보여준다.

문화유산에 깃든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는 익산역사유적지구가 유형유산 뿐만아니라 무형유산으로도

세계유산적 가치가 있음을 뒷받침해 주는 자료이며,익산역사유적지구는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10년 1월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공식 등재되었다.....익산 여행길라잡이 발췌

 

[익산 미륵사지] 사적 제 150호

 

 미륵사지는 백제 제 30대 무왕이 세운 사찰로,익산의 주산인 미륵산(과거에는 용화산이라 함)남쪽 기슭에 위치한다.

 

'삼국유사' 무왕 조에는 "왕이 부인과 함께 사자사를 가던 중 용화산 밑의 큰 연못애서 미륵 삼존이 출현하자 사찰을 짓고

싶다는 부인의 청을 받아들여 연못을 메운 후,법당과 탑,회랑 등을 가가 세 곳에 세우고

'미륵사'라 하였다는 미륵사지 창건설화가 전한다.

 

연못 주변에 능수버드나무를 심음으로 홍수가 나도 범람하지 않았다고 한다.

 

[미륵사지동탑과 당간지주]

 

[미륵사지 당간지주] 보물 제 236호

 

당간지주란 사찰에서 행사나 의식이 있을때 당을 걸어두는 길쭉한 장대인당간을 지탱하기 위해서  당간 양쪽에

설치하는 돌기둥이다. 미륵사지 경내에는 석탑의 남쪽에 동서로 약 90m의 간격을 두고 규모나 형태,

조성수법이 매우 비슷한 당간지주 2기가 세워져 있다. 장식이 적으며 단정한 형태를 보이는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륵사지 동탑]

                                                    탑을 7번 돌며 소원하는 기도를 하면 이루어진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한번만 돌아보기로 하고 우린 동탑 둘에를 돌아 보며~~                                         

 

삼원병립식 가람배치는 미륵불의 3회설법을 통해 사바세계를 구원한다는 미륵신앙을 현실세계에서 하려는 노력의 산물로써,

당시 백제인의 세계관과 창조성을 엿볼 수있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다.

 

정면 5칸 측면4칸 규모의 미륵사지 금당은 초반석 위에 1m높이의 주춧돌을 올려 지음으로써 의도적으로 지면과 금당 바닥

사이에 빈공간을 만든 독특한 건축양식을 하고 있다.미륵사지 역시 목탑 양식을 지닌 석탑으로써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양식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백제인의 예술성과 창조성,실용성을 엿볼 수있다.

 

신라의 국립사찰 황룡사와 견줄 정도로 웅장했던 사찰 규모와 금동풍탁 ,치미, 녹유연목와 등 만점의 출토유물은 7세기 당시,

익산미륵사가 백제의 국립사찰이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건축학도들이 익산을 많이 찾고 있다고 한다.

 

[송방지]

 

[미륵사지석등하대석]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 143호

 

미륵사지 석등하대석은 중원 목탑지와 동원 석탑지 북편에 2기가 위치하고 있다.

이 외에도 발굴조사에서는 원래의 위치를 이탈한 석등 부재들이 적지 않게 조사되었다.

중원의 석등 하대석은 한변이 105cm인 1매의 방형석으로 ,방형 지대석 위에 놓여있다.상면에는 8엽 복련이 부조되어 있는데

복련의 안쪽으로 8각형의 간주 받침이 있고, 그 안쪽에 직경 34cm의 원형구멍이 있다.동원에 있는 석등 하대석도

규모와 형태가 이와 비슷하다.미륵사지 석등하대석은 우리나라 석등중 제작시기가 가장 빠른 것으로서,석등의 시원양식을

전해주는 자료로서의 가치가 매우크다.

 

[금당지]

 

 

 

 

[미륵사지 석탑 해체 전경]

1980년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미륵사지 발굴조사에서는 2만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1993년 미륵산 사자암 발굴조사에서는 백제및 통일신라의 기와와 토기,'지치2년사자사조와' 명 암막새 등이 출토되어

삼국유사기록의 신빙성을 입증해 주고 있다.

 

 

[금동 제사리외호]

보주형 꼭지가 달린 뚜껑과 목이 긴 동체로 구성되어 있다.동체는 상하 두부분으로 분리되는데 상하가 맞닿는

부분에는 돌려 끼우면결합되도록 리벳이 설치되어 있다.사리호의 겉면에는 연화문과 인동당초문,

어자문이 새겨져 있으며,병안에는 금제 내화와 여러 색깔의

유리구슬,금제화형구슬,가루로 된 유기물 등이 채워져 있었다.

 

 

 

[미륵사지유물전시관]

1997년 5월 개관이래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뮤물을 보관,전시하여 백제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사회교육의

장으로서 역할하고 있다.현재 치미와,녹유연목와,금동향로 등 미륵사지 출토유물 190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관람시간:09:00~18:00

관람료무료 (063-290-6784)

휴관일:1월1일 ,매주 월요일

 

 

 

 

 

 

 

 

 

[미륵사지석탑] 국보 제 11호

 

미륵사지 석탑은 2001년부터 일제강점기때에 보강되었던 시멘트를 제거하고 석탑을 해체 복원하는

작업이 진행중이다.2009년1월 14일 1층 심주석 상면의 사리공에서 금제사리봉영기를 비롯한

사리장업이 발견됨으로써 미륵사 창건사실의 진정성을 한층 높여주게 되었다.

 

석탑의 현존높이는 14m로 탑의 규모만이 아니라 조성기법면에서도 주목을 받아왔다.

탑신의 1층 네 면에는 문을 만들어 내부로 들어갈 수있고 ,사방이 통하게 하였으며,내부의 중앙에는

목탑의 찰주와 같은 사방99cm의 거대한 사각형 심주석을 세웠다. 탑신 모서리 기둥돌의 배흘림 기법이나 얇고

넓은 옥개석의 네 모서리를 살짝 치켜 올리는 기법 등은 목조건물의 가구수법을 따르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미륵사지 석탑은 목탑에서 석탑으로 이행되는 변화 과정을 보여주는 한국석탑의 시원으로서,

백제인의 독창성과 실용성,7세기 당시 국제적인 문화교류의 실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다.

 

 

*******[삼국유사] 에는 백제 무왕의 탄생에 얽힌 신비한 이야기가 전한다.

"과부가 되어 서울 남쪽의 연못가에 살던 (무왕의)어머니가 어느 날 연못 속의 용과 관계하여 낳았다"

는 기록이다. 무왕은 인간의 아들이 아니라 용의 아들인 것이다.

무왕의 신비한 탄생은 익산 천도를 단행한 그의 웅지와 자질을 대변하는 상징성을 지닌다.

익산쌍릉 동쪽 1.2km 거리에 무왕의 탄생 설화가 깃든 마룡지와 서동생가터가 있는데 ,지표조사에서

백제 기와편이 다수 조사된바 있다고 한다.

 

 

익산시 문화관광과  http://www.iksan.go.kr

 

 

 

 

 

 

 

 

 

 

 

 

 

 

 

[명상음악] 그대 가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