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경기/안성--평택

참수리 357해군함대를 관람하고 돌아와서(평택6월26일)

美知 2009. 6. 27. 05:24

 

            평택의 해군 참수리 357고속정을 관람과 안보교육을 취지로 한 일정따라 나는 이곳을 처음으로 다녀왔다.

           개인적으로 평택을 처음갔던 만큼이나 설레임으로 여늬일 제쳐두고...결근에 미팅을 취소하고 글구 하튼 여늬일 포기한...

           해군 제2함대 헌병대대 2초소를 통과한 우리는 제일 먼저 간곳은 안보교육장에 그리고 영화한 편을 관람하고 일정이

           시작된다.영화시간을 불과 얼마 안되었지만 잠시의 충격과 아픔이 삽시간에 우리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그 것은 2002년 6월29일 서해바다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을 재현한 영화였다.

 

          늘 처럼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산다"라는 군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던 해군들은 일방으로 넘어온 북한정의 기습공격에

          사랑하는 부모님과 형제,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해군으로써의 충성을 다하고 떠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메여 영화를 보는 시종일관 한없이 흐르는 눈물과 아픔을 견딜 수가 없어 흐트끼며 울었다.

          이유없이 갈 수밖에 없는 그들은 누구를 위해 죽어야 했던건지 ...

          우리들의 이야기인 것을...

          지금 글을 쓰면서도 가슴이 아프다.

       

          사진을 촬영할 수있는 곳이 국한 되어있어 이곳에서 열심히 컷을 촬영하고..

          6월29일은 연평전 7주기를 맞이하여 357함대내부는 일정준비로 일반인들의 관람이 제한 되어있어 내부관람은

          할 수었음이 아쉬웠지만 이렇게라도 볼 수있어 내가슴에 또다시 감사함을 깨닫게 되었다.

          한상국 중사는 교전 이후 실종되었다고 안내되었지만 41일만에 기관실에서 발견되었다.  한중사는 죽어가면서도

          조정키를 움켜쥐었기에 357함대가 북방한계선(NLL),으로 흘러가지 않았다고 한다.

          가슴이 뭉클하고 아팠다. 곧 중사 승진을 앞두고 아내와 행복한 출근인사를 했던 그였는데....

 

 

 

 

 

 

 

             

              의무병 박동혁님은 다리를 수술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세상을 떠나

사랑하는 어머니께 효도하고 싶었던 순수한 젊은

      청년의 생은 이렇게 접을 수밖에 없었음에 가슴이 아팠다.

              우리모두는 다시한번 우리의 현 모습을 짚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 당시 관련기사의 주소)

http://news.media.daum.net/society/affair/200405/09/chosun/v6615390.html

전사자 명단은 윤영하 소령님, 한상국 중사님 서후원 중사님, 조천형 중사님, 황도현 중사님, 박동혁 병장님,

이 여섯 분입니다.

한마디만 더하자면, 유족들에 대한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에 실망한 고 한상국 중사님의 부인이신 김종선씨는 정부에게

실망했다며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등, 실망스러운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였습니다.

전투중 전사해 시신조차 제대로 수습하지 못해 40일 후에나 인양한 장병의 가족을 이렇게 홀대하는 정부가

도대체 어디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전사자의 가족들에게 최소한 백악관은 위로의 편지와 보조금을 지원하죠.

스페인은 외국 파병중 사고로 사망한 장병들의 시신이 자국에 도착할때 국왕이 직접 더운날씨에 참관했었습니다.

 

(이글은 2006년에 다음에 글 올린 어느분의 글을 옮겨왔습니다.)

 

  

              가슴이 아픔에 한없이 눈물들을 흘린 언니들은 그저 이 병사도 내아들같은 맘에 한번 사진도 함께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