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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팸투어 - 울진봉평신라비가있고 신라비를 기념하는 전시관이 있으니...

美知 2012. 5. 28. 08:17

 

 

팸투어 첫날 비가 어찌나 오는지~~ 안타까움과 함께 팸투어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해야하는것...나름대로 멋진 투어였다.

울진봉평신라비가 있어 전시관을 설립했다고 한다.

 

[봉평신라비전시관]

 

비가 참 많이도 왔던 기억이 물씬 난다.그래도 즐거웠던 투어이기에~~

 

        얼룩소를 잡아 하늘에 제사를 지낸 까닭이 있다하니~~~~

 

1988년 11월 4일 국보 제242호로 지정되었다. 봉평비라고도 한다.

1988년 1월 경북 울진군 죽변면 봉평2리의 논에서 객토()작업을 하던 중 발견되어,

4월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비의 재질은 변성화강암()으로 좋지는 않으나,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 있었으므로 원래의 형태를 보존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불규칙한 4각형 모양으로, 한 면에만 글씨를 새겼다.

 

 

비의 전체 길이는 204cm, 글자가 새겨진 면의 너비는 윗너비 32cm, 중간너비 36cm, 밑너비 54.5cm이다.

비문은 전체 10행으로 구성되었고, 서체는 예서()와 해서()의 중간 형태로

진흥왕순수비보다 치졸한 편이며, 문체는 신라식의 독특한 한문을 사용하였다.

현재는 원래 발견된 지점에서 북서쪽으로 50m 옮겨 비각을 세워 보호하고 있다.

내용은 거벌모라()와 남미지() 지역에서 무슨 사건이 발생하자 군대를 동원해서 이를 해결한 뒤, 소를 잡아 의식을 거행하면서 이 지역에 대해 사후조치를 취한 사실을 기록하였다. 이 비는 기존의 문헌사료에 나타나 있지 않은 많은 내용을 담고 있어서 신라사 연구커다란 활력을 불어 넣었다.

 

 

 

먼저 신라 정치사 핵심주제인 6부 문제에 대해서 기존에 성립시기와 과정에 관한 많은 이견이 있었으나,

'신라육부()'라는 구절이 판독됨으로써 이 비가 건립되기

이전인 6세기 초 이전에 이미 6부가 성립되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또한 법흥왕이 탁부()를 관칭()한 반면에 왕의 동생인 사부지갈문왕()은

사탁부() 소속으로 되어 있어서, 형제가 각기 다른 부를 관칭하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는 신라의 부를 각기 다른 친족집단 세력으로 설정해 왔던 기존의 견해를 송두리째 부정한 것으로,

부의 성격을 새롭게 조명해 보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노인법()과 죄인을 처벌하는 장형()의 존재는 법흥왕 때 율령이

성문법()으로서 실제로 행하여졌음을 증명해 주었다.

특히, 신라에 복속된 집단예민으로 보이는 노인과 이들을 다스리는 노인법의

존재는 신라의 대외적인 팽창과 대복속민시책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 밖에도 부()를 초월하지 못한 왕의 정치적 성격, 17관등()의 성립연대,

지방통치조직과 촌락구조, 의식행사 양상 등에 관한 문제들에 대해 새로이 접근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신라사 연구에 절대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인터넷발췌]

 

 

비가 그치고 화창한 다음날에 다시찾은 울진봉평신라비전시관을 방문하고

 

                              [광개토왕릉비]

 #

 

 

 

 

              전시관 뒤쪽으로 가면 많은 비석이 즐비하게 있다.

 

 

 

관람료는 아주 저렴하게 운영되고 있어 울진을 여행하거나 다니러 갈때 쉽게 방문할 수있는

좋은 점이 있다.

 

 

넓은 전시관을 자랑하는 울진봉평신라비 전시관 내부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