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짜유기박물관은 전국 유일의 방짜유기를 테마로 한 전문박물관으로서 자랑스러운 고유문화유산인 방짜유기와 그 제작기술을 전승 보존하며 후손들에게 '우리 것'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알리고 지역문화 발전을 이루고자 2007년 5월 25일 개관하였다,
수려한 풍광으로 유명한 팔공산에 자리 잡은 박물관은 세계적으로도 그 기술 보존국이 드문 방짜유기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을 높이는 한편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꾀하는 21세기 문화경쟁의 시대에 발맞춰 품격 있는 전시공간과 다양한 문화교육 프로그램, 각종 문화예술 공연 등을 마련하여 찾아오시는 관람객들에게 인상적이고 특화된 문화예술공간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내린 비 소식에,,,,대구는 우리를 맞이하는 접대성 날씨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전시관은
입구를 들어서니 각국의 언어로 표기된 브로셔가,,,비치되어 있었고 상냥한 미소의 데스크 담당자께서 친절히 인사를 해주신다 ^^ (허락하에~사진 게제 )
입구에 있는 특대징의 모습, 직접 칠 수는 없고 특대징의 소리는 버튼을 누르면 들을 수 있다,
전자방명록을 직접 입력해보고 있는 관람객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시대부터 유기를 사용하였는데 현재 출토되고 있는 각종 청동기 유물에서 당시의 유기 제조기술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청동기문화는 시베리아의 ‘미누신스크-스키타이’청동기문화와 관련이 있는 북방계의 ‘오르도스-요령지방’청동기문화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시대 초기에는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과 조문경(粗文鏡)을 제작하였고, 후기가 되면 세형동검(細形銅劍)을 독자적으로 주조하여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세문경(細文鏡), 방울, 의식구를 비롯한 각종의 도구를 제작하였다.
그 후 철기시대가 되면 청동기는 얼마동안 철기와 공존하다가 점차 사라지게 되며, 삼국시대부터 다시 발달하기 시작한다. 백제의 경우 일본에 제련 및 세공기술을 전해주었음이 『일본서기(日本書紀)』에 기록되어 있으며, 무령왕릉(525)의 왕비 머리 부분에서 출토된 금동제 대발(大鉢)은 청동으로 제작한 발우이다. 또한 『삼국사기』기록에 의하면 신라에는 경덕왕(742~765) 이전부터 철유전이라는 기관을 두고 철과 유석을 관장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는 금속의 재료 면이나 기술면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온 때였다. 당시의 뛰어난 제조기술은 백률사 약사여래상, 상원사 동종(725), 성덕대왕 신종(771) 등 많은 불교미술품 등을 통해 볼 때 짐작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빛깔이 고운 ‘고려동’을 생산하여 중국과 교역을 하였다. 제작기술도 발전하여 불상이나 각종 불교용구, 생활용기, 동활자를 비롯하여, 말기에는 화포 등 다양한 종류의 기물을 제작하였다. 왕족과 귀족은 방자기법으로 제작한 얇고 질긴 청동그릇을 식기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초기부터 국가에서 채굴에 힘을 썼으며, 『경국대전』에 의하면 국가에서 쓰는 유기를 만드는 유장(鍮匠)을 중앙 장인인 경공장(京工匠)으로 공조(工曹)에 8명, 상의원(尙衣院)에 4명을 두었고, 지방관아에 필요한 유기를 만드는 외공장(外工匠)도 상당수 배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는 숭유억불정책의 영향으로 불교적 색채를 띠는 금공품이 많지 않았던 반면 담배함, 화로, 향로, 반상기 등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느낌을 주는 형태의 생활용품과 민예품이 많이 제작되었다. 자기를 대중적인 식기로 쓰던 시대였음에도 유기는 고려시대에 이어 상류층에서 식기로 사용하였으며,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도 생활 용구로 사용되어 전국 각지에서 생산되고 시장을 형성하였다.
근대 말에는 일본에 의한 유기 공출이라는 명목으로 각 가정에서 소유한 거의 모든 유기들을 수탈당하였다. 그 후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유기는 다시 성행하기 시작하였으나 6·25 이후 연탄을 사용하면서부터 연탄가스에 변색되기 쉬운 놋그릇 대신 스테인리스 그릇을 선호하여 유기는 점차 사라졌다. 그러던 것이 최근 각종 실험을 통해 병원균 O-157 살균기능, 농양성분 검출기능 등이 밝혀지면서 부각되고 있으며, 현재 악기, 제기, 식기 및 각종 생활용품 등으로 제작되고 있다
대구방짜유기박물관은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이봉주 선생이 평생 제작, 수집한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방짜유기 작품 1,489점을 대구광역시에 기증함에 따라 조상의 얼과 지혜가 담긴 방짜유기 제작기술을 전승 보존하며 후손들에게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 지역문화 발전을 도모하고자 전국 최초로 건립한 전문박물관이다
기증실은 방짜유기장인 이봉주 옹께서 기증하신 작품들 중 예술적 가치가 높고 정교하며, 섬세한 것들만 모아 생활유기, 상차림, 제기류, 종교용구류로 구분하여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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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짜유기는 정확히 구리 78%와 주석 22%의 합금을 용해하여 원형 물판에 부어 금속괴(일명:바둑)를 만들고, 다시 불에 달군 금속괴를 11명이 1조가 되어 망치질을 되풀이해 가며 얇게 늘려 형태를 잡아가게 된다.
- ① 용해 및 바둑 만들기
- 방짜유기 제작에 기본인 놋쇠 괴(塊)를 똑같은 용량으로 여러 개를 만드는 주조과정으로 합금→용해→용탕붓기 순서로 진행한다.
- ② 네핌질
- ‘바둑’을 가열해 늘이는 작업을 반복하고 협도로 가장자리를 정리하는 과정이다. 작업은 ‘모루’를 중심으로 가장자리에 둘러앉아 한다.
- ③ 우김질
- 네핌질이 끝난 바둑에 가열과 메질을 반복해서 한꺼번에 여러 개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반복 과정에서 같은 크기로 늘어난 기형을 10개정도 겹치게 하는데 이를 ‘우김질’이라 한다.
- ④ 냄질
- 우김질한 바둑을 U자형의 그릇 모양으로 겹치게 하는데 이것을 하나씩 떼어내는 작업을 ‘냄질’이라고 하며 떨어진 각각을 ‘우개리’라고 부른다.
- ⑤ 닥침질
- 냄질이 끝난 우개리를 불에 달구어 형태를 바로잡는 작업으로 6명이 ‘닥침망치’를 이용하여 같은 동작으로 서로 잡아 닥치며 바닥을 문지른다.
- ⑥ 제질 및 담금질
- 닥침질이 끝난 기형을 불에 달구어 가면서 성형하는 과정을 ‘제질’이라 하고, 가열한 놋쇠의 강약 질을 잡아 강도를 높여주기 위한 작업을 ‘담금질’이라 한다.
- ⑦ 벼름질
- 담금질한 기물은 찬물에 넣는 순간 일그러지게 되므로 원래의 형태대로 잘 잡아주는 작업을 ‘벼름질’이라고 한다.
- ⑧ 가질
- 완성한 기물의 산화피막을 제거하고 표면의 메자국도 없애 놋쇠의 본색이 잘 드러나 광이 나게끔 하는 과정이다.
◈ 대구 광역시 동구 도학동 399번지
☏ 053.606.6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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